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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고시원에도 볕 들이는 방법!

이제 고시원은 더 이상 고시생의 공부방이 아니에요. 요즘 같은 주택난에 새롭게 등장한 1인 가구의 쉼터지요. 오피스텔을 표방하는 고시원들의 등장으로 이름도 고시텔·리빙텔·하우스·원룸텔 등으로 바뀌고 있어요. 그러나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고시원 특유의 어두운 면을 감싸기는 어려워 보여요.

 

 

우리나라 1인 가구 수는 2015년 88만여 가구에서 2019년 614만여 가구로 7배 가까이 급증했다. 고시원 수도 2004년 3900여개에서 2018년 1만2000여개로 3배나 증가했다. 그 중 75%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고시원은 고시생의 공부방 개념에서 벗어나 고시텔·리빙텔·하우스·원룸텔 등의 간판을 내걸고 저소득 취약계층의 준주택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고시원은 방 쪼개기 수법으로 과거 은퇴세대의 노후생활 생계였다. 하지만 요즘엔 1인가구의 기호 변화에 맞추어 오피스텔을 카피한 고시원도 등장하고 있다. 관이 주도하는 청년임대주택 공급엔 부지 확보, 주택 매입, 지역민과의 갈등, 교통 불편 등 문제도 적지 않다. 고시원 같은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도시연구소 김준희 책임연구원은 “고독사의 대명사가 된 고시원에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고 환경 개선 리모델링을 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시원 사업자로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운영자 대부분이 건물 임차인, 환경개선 한계


#1.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인근에서 60대 A씨가 운영하는 고시원 B하우스. 그는 은퇴 자금으로 건물 소유주에게 2개층의 고시원을 보증금 약 5000만원, 매월 임대료 200만원대에 빌려 운영하는 임차인이다.

직장인이 많은 산업단지나 오피스권역 주변의 고시원을 인수하려면 더 많은 투자금이 소요된다. 요즘엔 은행 이자가 바닥이어서 임대인이 보증금보다 월세를 더 많이 요구하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나오는 고시원 매물의 경우 월 임차료가 400만원을 넘을 정도다.

A씨가 인수한 고시원은 5~10㎡(1.5~3평) 크기의 20여 개 방으로 이뤄져 있다. 주변엔 낡은 주택들과 점포들이 혼재돼 있다. 하지만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강남권에 한 번에 갈 수 있는 지하철역과 고시생이 많은 노량진 학원가가 가깝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 층의 성향을 고려해 방마다 욕실·화장실을 갖춘 점도 선택한 이유다.

A씨는 이곳을 새롭게 단장했다. 가전과 침구를 바꾸었고 수납장도 보강했다. 샤워기·변기도 보수했다. 입실자들이 대부분 수도권 외지와 지방에서 오는 점을 고려해 입실 첫날 비누·샴푸·수건·실내화 등을 무료 제공한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젊은층을 유치하려고 호주머니를 털었다.

 

입실료는 보증금 없이 매월 40만원 전후로 책정했다. 수도·전기·냉 난방·관리·TV·인터넷·밥·김치·라면 비용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혼자 살면서 식사를 챙기기 어렵거나 기초생활수급비로 장기간 머무르는 이용자도 있다.

하지만 A씨는 올해 고시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공실이 급증한 것이다. 발병 초기인 지난 봄엔 1개층에서 공실이 80%에 달했다. 최근 심리적 공포감이 다소 사그라지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온 청년들이 늘면서 방이 다시 차기 시작했지만 줄을 서던 예전만은 못하다.

그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서울 청년주택 공급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민했으나 생각을 접었다. 지원을 받으려면 자격조건에 맞춰 입실료를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수요를 유치하려고 입실료를 시세보다 낮게 정했는데 추가 인하하면 임차료·운영비 등 수지타산이 맞질 않아서다. 고시원 운영자들이 대부분 건물 임차인이라는 점도 환경을 개선하는데 한계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는 “고시원은 지방에서 갓 상경한 많은 사회 초년생들이 살인적인 서울 집값을 피해 거쳐 가는 관문 같은 둥지”라며 “청년들이 이를 디딤돌 삼아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거 보조금 지원을 확대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만 19이상 30세 미만 미혼 자녀를 대상으로 청년주거급여를 지급할 계획이다. 그동안 30세 미만은 부모와 생계·주거를 분리해도 동일한 가구로 취급해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주거급여는 부모·자녀의 소득·재산 현황, 부모·자녀 간 주거지 거리, 중위소득 45% 이하 등 각종 자격요건에 맞아야 해 지원받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애매모호한 건축법·행정처리로 사업자 고충


#2. 서울 광진구 구의동 C고시원오피스텔. 50대 D씨가 금융 자금으로 2년여에 걸쳐 세운 1인 가구용 중소형 건물이다. 1층엔 상가, 2~7층엔 고시원·오피스텔로 구성했다.

내부 구조는 모두 같고 넓이는 바닥이 약 11~12㎡, 복층이 약 7~8㎡다. 방 쪼개기를 한 여느 고시원과 비슷한 크기지만 수납공간의 짜임새를 높이고 개방감을 키웠다. 각 방마다 바깥으로 이어지는 2~3㎡ 면적의 발코니도 설치했다. 입실료는 보증금 1000만원에 매월 60만원 수준이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올리거나 내려서 월세를 조정할 수 있다.

주변엔 건국대·세종대·동서울버스터미널이 있고 한강 너머 지하철 두세 정거장 거리에 강남구·송파구가 있다. 문을 연지 얼마 안 돼 젊은 수요로 금방 채워졌다. 도심에 청년 층 대기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낡은 다세대·다가구 주택, 너무 비싼 아파트·오피스텔을 피해 찾아 온 직주근접 수요다.

D씨는 업계에서 활동한 건축 경험도 있지만 C건물을 지으면서 숱한 고초를 겪었다. 그는 주차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시원과 오피스텔을 섞어 지었다. 전체를 오피스텔로 지으면 호실당 0.5대씩 약 5대가 주차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C건물이 들어선 땅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던 협소한 대지(약 33평)다.

 

사방이 주택과 건물에 둘러싸여 땅을 확장하기도 어려웠다. 이 때문에 주차공간을 2대 이상 만들기 어려웠다. 그는 주차장 확보 규정이 오피스텔보다 느슨한 고시원법(132㎡당 1대)을 적용하고, 지하와 지상을 오가는 승강기를 설치해 주차 문제를 해결했다.

소방법과도 마찰이 있었다. 구의 건축 인허가 단계 땐 아무런 제재가 없었는데 완공 후 사용승인 과정에선 문을 미닫이에서 여닫이로 바꾸라는 소방서의 규제를 받은 것이다. 그는 “건축계획을 심의하는 초기 단계에서 제대로 수정하고 관공서간 잘 협업했으면 예상치 못한 비용부담 증가가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는 D씨뿐만 아니라 고시원·오피스텔 같은 1인 가구 소형 주택을 지어본 건축주라면 누구나 겪는다. 문제는 자치단체 건축부서의 행정처리가 복잡하고 긴데다 담당 공무원마다 처리 절차와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 운용해 건축주가 느끼는 불합리와 금융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소형건축을 주로 하는 E건설사 관계자는 “심사건수가 많지 않다며 심의 회의를 연기하기 다반사고, 새로운 주거편의 시설을 설치하면 전례가 없다며 퇴짜 놓기 일쑤”라며 “이 때문에 착공이 지연되면서 금융이자도 늘어나게 돼 도시주택 공급에 나서려는 건축주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시와 구의 정책 충돌도 문제다. 서울시 정책은 주택 공급사업에 용적률 상향 혜택을 주고 있지만, 구의 조례나 지구단위계획은 용적률을 제한하고 있다. 인·허가권을 쥔 구의 규정이 시보다 우선이어서 시의 정책은 있으나마나 한 셈이다.

보이지 않는 자치단체의 권고사항도 걸림돌이다. 권고사항은 조례 등에 명시돼 있지 않은, 내부 지침 같은 비공식 금지규정이다. 예를 들어 고시원 같은 다중생활시설을 지을 때 법에는 위배되지 않는데 건축 지역이 인구밀집 지역이어서 인허가를 금지한다는 지침이다. D씨는 “국민 누구나 중 소형 주거시설을 수월하게 짓도록 관련 법규와 적용을 일원화·간소화하는 개선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사업자들도 고시원 환경 개선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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