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신창용 씨가 아트&컬처 분야의 차세대 파워리더로 선정됐어요. 클래식계의 ‘젊은 거장’이라 불리며 피아노 앞에서 화려한 테크닉과 섬세한 감정선을 펼쳐 보이던 27세 피아니스트는 인터뷰 촬영장에서 밝은 에너지와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반전 매력을 선사했어요.
신창용 피아니스트는 2016년 힐튼 헤드 국제 콩쿠르 우승, 2017년 서울 국제 음악 콩쿠르 우승에 이어 2018년 지나 바카우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나 바카우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클리블랜드 콩쿠르와 함께 미국의 3대 피아노 콩쿠르로 꼽힌다.
라흐마니노프를 사사한 그리스 출신 피아니스트 지나 바카우어를 기리기 위해 1976년에 시작된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신씨는 심사위원 재량으로 주어지는 베라 고르노스타예바 특별상까지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나 바카우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으로 신씨는 리사이틀과 협연, 음반 녹음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와 힐튼 헤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부상으로 세계 최고의 피아노 제조사 스타인웨이의 ‘스피리오 R’ 아티스트로 선정된 신씨는 스타인웨이앤선스 레이블에서 앨범 2개를 발매했다.
특히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등을 연주한 첫 앨범은 미국의 권위 있는 클래식 전문 라디오 채널 WQXR가 꼽은 ‘2018 최고의 음반들’에 선정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연 시작 전, 보통 어떤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신창용 피아니스트는 “계속해서 자기최면을 걸어요”라며 “‘왜 떨어? 잘할 수 있어!’ 소리 내면서 이야기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약간 이상해 보일 수 있겠죠”라며 웃어 보였다.
신창용은 피아노를 배우던 형을 옆에서 따라 하며 피아노를 처음 접했다. “형이 6살에 피아노를 먼저 시작했는데 제가 그걸 보면서 너무 하고 싶다고 졸랐대요. 부모님이 4살은 너무 어려서 안 된다고 했는데, 유치원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피아노를 쳤다고 하더라고요. 6살이 되면서 피아노에 흥미를 잃은 형 대신 제가 배우게 됐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취미로 배우던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이다. 당시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피아노를 전공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추천해 전문 입시학원으로 옮겨 체계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피아노 전공을 염두에 두면서 연습량도 늘었다.
그는 이날 촬영장에 초등학교 시절 매일같이 사용하던 워크맨을 가져왔다. 레슨을 받거나 혼자 연습할 때 워크맨에 공테이프를 넣어서 녹음하고, 날짜와 곡명을 적어 보관했다.
그는 “녹음한 곡들을 수시로 앞뒤로 돌려 듣다가 테이프가 늘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예원(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항상 연주를 녹음해놓고 다시 찾아 듣곤 했는데 이런 테이프가 집에 가득 쌓여 있죠”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의 연습량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씨의 재능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11세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그는 이후 이화경향 콩쿠르, 주니어 쇼팽 콩쿠르, 음연 콩쿠르, 수리음악 콩쿠르, 삼익 콩쿠르 등에서 1위를 휩쓸었다. 그는 이 시절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피아노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기”라고 회상했다. 이어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며 다양한 곡과 테크닉을 익혔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은 나이였는데 참고 피아노 연습에 몰두했다”고 설명했다.
예원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졸업한 그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티스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하며 고등학교 2학년부터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커티스 음악원은 학생 수가 170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로 미국 3대 명문 음대로 꼽힌다.
그는 커티스 음악원 재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교수님의 눈물을 떠올렸다. “커티스 음악원은 학기마다 실내악이 필수에요. 당시 친구들과 슈만 피아노 퀸텟을 연주했죠. 연주를 마쳤는데 교수님이 눈물을 글썽거리시는거에요. 무언가 잘못됐나 싶었는데 교수님께서 ‘너무 감동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경험으로 ‘음악은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 상황이나 마음가짐과 상관없이 듣는 사람이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라는 걸 느끼게 되면서, 이후 연주에 임할 때 나는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관객과 심사위원들에게 맡긴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후 줄리어드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 신씨는 학사와 석사를 거쳐 지난해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학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날아오르려던 그에게 갑작스런 휴식이 찾아왔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2020년에 계획했던 콩쿠르와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예상치 못한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고 쉬었어요. 오히려 재정비하고 쉴 틈이 생겨 감사했죠”라고 운을 띄웠다. 신씨는 지난해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 출전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취소됐다.
그는 “해가 갈수록 내 실력도 연주 환경도 발전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코로나 이슈가) 나쁘게 작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라면서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는 것도 있고, 한 템포 쉬었다 갈 수 있어서 오히려 올해 더 좋은 연주를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대답했다.
쉽지 않은 한 해였지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지난해 세 번째 앨범이자 국내 첫 공식 앨범인 ‘GASPARD de la NUIT’를 발매한 것.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앨범인 만큼 바흐, 쇼팽, 라벨, 그라나도스, 드뷔시까지 그의 취향이 듬뿍 담겼다.
그는 “온전히 제가 원하는 곡들로 꾸렸어요. 관객분들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곡과 제가 제 연주 스타일을 들려드리고 싶은 곡들을 고민해서 짧은 곡들로 다양하게 구성했죠”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 어려움으로 녹음 작업을 이틀 만에 완성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콩쿠르와 각종 공연이 취소되어 관객들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 유튜브(또모채널)에 출연했는데 뛰어난 실력과 톡톡 튀는 성격으로 조회수 200만 뷰가 넘는 인기를 구가했다. 이 채널에서 연주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3곡 중 최고 난도로 꼽히는 스카르보는 3개월 정도 연습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콩쿠르를 휩쓸어온 그는 뛰어난 집중력과 멘탈의 소유자다. 그는 무대를 준비할 때 “짧고 집중도 있게 준비해야 신선한 연주가 나오는 편”이라며 “오랜 기간 준비하다 보면 곡에 흥미를 잃어버려서 제 자신의 연주가 진부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집중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걸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또 “성격이 단순한 편이라 집중이 안 되면 아예 쉬거나 친구들을 만난다”면서 ”제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집중이 안 될 땐 미뤄뒀던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죠”라고 덧붙였다.
그런 그도 피아노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흔들리던 그를 다잡아준 이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시절 스승인 강충모 교수였다. “피아노를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네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니 계속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해주셨던 게 위로가 많이 됐어요. 다시 열심히 할 수 있게 된 계기였죠”라고 말하는 신씨의 표정에서 홀가분한 기색이 느껴졌다.
세계 3대 콩쿠르(쇼팽·퀸 엘리자베스·차이코프스키) 출전이 부담이 되진 않느냐는 질문에는 “세계적인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이 유일하다.
이후 실력 있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꾸준히 도전하며 한국 클래식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신씨는 “타이틀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지, 그걸 목표로 하진 않아요. 그냥 가서 하는 거죠.(웃음) 다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라고 말했다.
2020년이 쉬어가는 해였다면 2021년은 힘차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오는 3월 안산을 시작으로 광주, 서울, 인천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으며, 지난해 연기됐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쇼팽 콩쿠르가 각각 5~6월과 10월에 벨기에와 폴란드에서 열린다. 10월 말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리사이틀을 연다.
인생 목표를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신씨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 더 성장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작년은 짧게 느껴졌는데 올해는 아마 길게 느껴질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공연이 끝나면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 넌지시 묻자 “친구들과 다음 날이 없는 것처럼 놀고, 며칠 쉬고, 소소하게 갖고 싶었던 것도 사요. 생각보다 평범하죠?”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젊은 거장의 패기와 20대 청년의 풋풋함이 겹쳐 보였다.
※ 파워리더 선정 이렇게 했습니다
아트 & 컬처 부문 2030 유망주는 2020년 12월 28일부터 올해 1월 7일까지 약 2주에 걸쳐 심사위원 6명의 도움을 받아 선정했다. 미술과 음악 분야 심사위원은 각 분야에서 명망이 있거나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인물로 구성했다. 각 심사위원이 최대 5명의 유망주를 추천했고, 이 과정을 거쳐 총 22명이 후보자로 올랐다. 이중 중복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순으로 올해의 유망주를 선정했다.
심사위원: 금난새 지휘자,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 김정현 스톰프뮤직 대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황석권 월간미술 편집장(가나다순)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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