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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공무원은 시청 6층에서 9층 다녀오면 출장비가 2만 원?

채 10m도 되지 않는 거리를 움직였다고 해서 출장비가 나오는 곳이 있다면 믿을 수 있으신가요? 공무원 사회에서는 전국 지자체마다 허위 신고해 관내 출장비 타내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해요. 이를 마치 수당처럼 생각해서 매달 수백억의 혈세가 세어나가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적발돼도 부당수령액 환수에 그쳐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해요.

 

한 지자체 민원실에서 공무원들이 민원인들을 응대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행정지원과 소속 공무원 A씨는 지난해 8월 22일 오전 성남시의회에서 열린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뒤 관내 출장비를 신청해 2만원을 받았다. 성남시청과 시의회는 10여m 길이의 구름다리 통로로 연결돼 있다. 두 건물을 오가는 데에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A씨뿐 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시의회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에 참석하면 이를 관내 출장으로 올려 출장비 2만원을 수령하고 있다.

업무 시간 중에 관용차를 타고 민원 현장을 확인하러 나가도 출장비를 탄다. 성남시 행정지원과 소속 공무원 2명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10개월간 43회에 걸쳐 관용차를 이용하고 출장비 86만원을 받았다.

시청 건물 안에서 다른 층을 오가며 업무를 보고도 출장비를 챙겼다. 행정지원과 공무원 B씨는 행정지원과가 있는 6층에서 행정자료실이 있는 4층을 다녀오고 출장비 2만원을 타냈다. 출장 목적에는 행정자료실 운영용품을 조사한다고 기록했다. 행정지원과는 9층의 하늘북카페 물품을 조사하기 위해 6층에서 9층을 오간 것도 직원들에게 1회당 2만원씩 출장비를 지급했다.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 10개월간 성남시 행정지원과에서만 이런 식으로 시청 건물 내부와 청사에서 진행한 행사와 관련해 지급한 관내 출장비가 370여만원에 이른다. 성남을 바꾸는 시민연대(성남시민연대)가 행정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출장비가 줄줄 새고 있다. 성남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지자체에서 관내 출장비를 공무원들이 수당처럼 나눠 갖는 병폐가 일상화돼 있다. 오래전부터 계속돼온 탓에 부당 수령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관내 출장비와 관련한 기준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공무원 보수 등의 업무지침에 따르면 관내 출장비는 1회 2만원(4시간 기준)으로 거의 모든 지자체가 대동소이하다. 지침상 지급 조건이 정해져 있다. 왕복 2㎞ 이내의 근거리 출장은 실비로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가령 불가피하게 택시 등을 이용할 경우 실제 사용한 비용만 지급하는 게 원칙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시청에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시의회에 걸어서 오간 경우 출장비 지급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시청에서 층수가 다른 부서를 걸어서 오간 것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보수 지침에는 관용차를 이용한 관내 출장은 출장비에서 1만원을 감액하게 돼 있다. 관내 출장비 기준금액이 2만원이면 1만원만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도 지켜지지 않는다. 성남시는 시장 관용차를 운전하는 직원에게 122차례에 걸쳐 출장비 244만원을 지급했다. 이 중 122만원은 부당 청구가 의심된다.


수당처럼 타 먹는 관내 출장비에 매달 수백억 혈세 줄줄

 

성남시청(뒤 건물)과 시의회(앞)는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다. 성남시 공무원들은 이 다리를 오가며 시의회에 참석한 뒤 출장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내 출장비를 받을 수 있는 한도는 지자체마다 다르다. 예산이 비교적 넉넉한 강남구 등 서울의 큰 자치구들은 월간 출장비 한도가 1인당 30만원 정도다. 그 외의 서울지역 자치구들은 26만~28만원이다. 예산이 부족한 지방 소도시들은 10만~20만원 선으로 관내 출장비를 책정해두고 있다.

 

지방행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NPO주민참여나 성남시민연대 등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분석 대상 지자체 대부분에서 개인별 월 지급 한도를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지자체 공무원 수는 32만 명이 넘는다. 전국 지자체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관행이라고 가정하면 매달 수백억 원의 세금이 공무원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가는 셈이다.

관내 출장 내역을 허위로 올려 출장비를 타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부산시 해운대구는 지난해 전체 공무원 1300여 명이 관내 출장비 허위 수령 의혹으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이들은 2017~2018년에 수백 차례씩 관내 출장을 허위로 신고해 출장비를 받은 혐의를 받았다.

그런데 경찰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인원은 4명에 그쳤다. 수사 범위가 너무 넓고 해운대구의 거의 모든 공무원이 엮여 있어 전체를 수사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송치한 이들마저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최동길 NPO주민참여 대표는 “구체적인 자료까지다 제공했는데 경찰관 한 명이 어떻게 1300명을 다 수사하겠나? (부패의) 몸뚱이가 너무 커서 손조차 못 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관내 출장비 부당 수령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착복을 넘어 조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관내 출장비를 허위로 청구하려면 한 부서 안에서 적어도 3명이 협조해야 한다. 출장비를 청구하는 당사자와 이를 결재하는 부서장, 그리고 비용 지급을 처리하는 서무 담당 직원의 뜻이 맞아야 정상 집행한 것으로 처리할 수 있다.

시민단체 정보공개 청구로 공개된 인천시 중구의 민원지적과 팀장 L씨 사례의 경우 2016~2017년 수십 차례의 관내 출장 내역이 ‘가족관계등록 접수 현황 확인’, ‘오전 10~11시’로 동일하게 기록돼 있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가족관계등록 변경 신청은 구청과 운서동, 영종동에서 하고 있어서 구청 내에서 업무를 본 게 아니라면 한 시간 내에 출장을 다녀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허위 기재 가능성이 짙다고 지적했다.

부산시에서는 한 부서 직원이 팀 내 직원 10명이 모두 동시에 관내 출장을 나간 것으로 신청해 출장비를 수령했다가 시의회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김문기 부산시의원은 “부산시 직원 2200여 명이 모두 관내 출장비를 청구한다면 그 지출액은 연간 42억원에 달한다”며 “과거 공무원 급여가 박봉이었던 시절에 급여 보전 차원에서 관행처럼 이어져왔다는 게 시 관계자들의 변명”이라고 전했다.



부서장과 동료들 협조 아래 조직적으로 이뤄져

 

지난해 7월 한 시민단체는 허위로 관내 출장 신고를 해 출장비를 받아 챙긴 혐의로 부산 해운대구 공무원 1300여 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렇게 수령한 출장비 중 일부는 부서의 공동경비로 사용한다고 일선 공무원들은 전했다. 경기도에서 손꼽는 규모의 한 지자체 공무원 정모씨는 “직원들이 받은 관내 출장비 중 일부는 회식이나 경조사비 등 부서에 필요한 공동경비로 사용한다. 개인적으로 공금을 빼돌리는 것도 아니고 모두 당연하게 받고 있어서 혼자 거부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사법당국은 출장 내역이 허위로 기재돼 있더라도 이를 사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면 벌을 면해준다. 일일이 법대로 하기엔 지나치게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법당국의 온정주의가 공무원들의 부정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해운대구의 한 공무원은 경찰 조사에서 “개인적으로 쓴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처벌받아야 하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적인 착복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처벌을 면했다.

그러나 허위 출장으로 만든 부서비가 공무와 무관하게 쓰인다는 주장도 있다. NPO주민참여 관계자는 “공무원들의 복지 경비로 지출된다고 했던 부서비를 지역 기자들에게 전달했다는 제보를 입수해 확인 중”이라고 했다. 제보에 따르면, 지자체 출입기자들이 공무 해외 출장에 동행할 때 부서장들이 거마비(擧馬費, 교통비) 명목으로 촌지를 제공하는데, 이 돈이 관내 출장비로 조성한 부서비에서 지출된다는 것이다.

 

최동길 NPO주민참여 대표는 “제보자가 지역 언론인으로서 직접 경험한 일이어서 상당히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어 사법 당국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며 “이는 공금 유용이나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판례상 출장비 지급 내역은 비공개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은 개인정보나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정보 공개를 거부한다. 출장비 관련 자료가 공개되기까지 적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행정심판에서 공개 결정이 내려져도 지자체들은 기어코 행정소송까지 벌여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뒤에야 마지못해 정보를 공개한다.

성남시민연대가 확보한 성남시 관내 출장비 관련 자료도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의 공개 결정이 내려진 뒤 2개월 만에 공개됐다. 출장 내역과 출장비 지출 내역을 따로 제공하는 식으로 시민단체의 확인 작업을 어렵게 하는 꼼수도 부린다. 정보공개법상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이름과 직위는 비공개 대상이 아니어서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


수십 년 관행이란 이유로 생활 속 적폐 방치돼선 안 돼


출장비 지급에 관한 행정안전부 기준은 분명하다. 행안부는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출장의 정의를 ‘정규 근무지 이외의 장소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근무지 내 출장 시 실비가 발생하지 않으면 여비를 감액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게 행안부의 공식 의견이다.

 

출장비는 보수가 아니라 출장업무에 드는 경비를 보전하기 위한 실비 보상 성격의 경비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행안부도 출장비 지출 원칙을 준수할 것을 지자체에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출장비를 급여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의 인식 때문이다.

관내 출장비 집행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공무원들도 알고 있다. 수원시의 한 7급 공무원은 “공무원으로 임용됐을 때부터 늘 이뤄져왔던 관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혼자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시간이 가면서 ‘박봉인데 이 정도쯤이야’ 하는 자기합리화에 빠진다.” 화성시의 한 공무원은 “규정대로 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조직에서 배척당하기 일쑤다. 몇 사람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직자의 청렴과 공직사회의 자정을 이끌어야 할 공무원노조도 관내 출장비 문제는 손을 놓고 있다. 공무원노조 집행부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서다. NPO주민참여 관계자는 “우리가 조사한 지자체의 공무원노조 위원장과 간부들도 관내 출장비를 부당 수령한 사례가 확인됐다”며 “개혁 성향의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조차 시민단체가 공격받을 수 있다며 오히려 우리 활동을 만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 스스로 개선하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관내 출장비 문제가 불거져도 부당 수령이 명백한 몇몇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 출장비를 환수하는 데 그치고 만다. 지방공무원법상 출장비를 부정 수령하더라도 수령한 금액의 2배 이내에서 가산해 환수하도록 할 뿐 다른 처벌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NPO주민참여로부터 지난해 7월 거의 모든 직원이 고발당한 부산 해운대구의 경우 자체 감사를 통해 공무원 8명에게서 출장비 132만원을 환수했다. 이들에게는 가벼운 징계에 해당하는 ‘주의’ 처분을 내린 게 전부였다.

황성현 성남시민연대 활동가는 “관내 출장비 문제야말로 공직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생활 속 적폐’”라며 “출장비 지급 원칙을 구체화하고 처벌을 강화해 공직자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관내 출장비 부당 수령 사례
성남시 OO과, 시의회 상임위원회 참석 후 출장비 지급
성남시 운전 직원, 의전 및 지시사항 목적 122회 출장비 244만원 수령
성남시 OO과, 공용차량 이용 민원현장 확인 34회 출장비 68만원 지급
부산 해운대구, 인터넷 물품 구매 후 물품 구매·조사 목적 출장비 지급
인천 중구 OO과, 160m 거리 문구점 물품 구매 후 출장비 지급
부산시 OO과, 팀원 10명 동시 관내 출장 처리 후 출장비 지급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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