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와 ‘놀이’를 함께하며 가족 간 유대관계를 배우고 쌓아가요. 여기서 오는 정서적인 안정감은 아이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요. 그런데 한국 아이들 열에 아홉은 부모와 노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한국 부모들 또한 자신이 아이와 잘 놀아주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지요. 국내 두 번째 레고 공인 작가이자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이재원 작가는 그 해답을 ‘레고’에서 찾았어요.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이어온 레고 가족의 특별한 소통 방식은 딸 보원양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 레고 매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방에 수많은 레고 기성품과 브릭이 가득한 그곳은 이재원(41) 작가의 작업실이자 딸 보원(10)양과 시간을 보내는 아지트다. 주말이면 아빠와 딸은 캠핑 가듯 짐을 싸 들고 작업실로 향한다.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브릭으로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집 다음으로 작업실이 좋다”는 보원양에게 아빠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곧바로 “친구 같은 아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녀가 함께 만든 작품에는 두 사람의 개성이 모두 묻어난다. 보원양의 뛰어난 색감과 이재원 작가의 장기인 정교함이 만나 작품의 퀄리티도 한층 높아졌다. “보원이 관점에서 내게 해주는 조언들이 영감이 된다”고 이재원 작가가 말했다. 보원양도 “아빠가 브릭 하나하나 꼼꼼하게 조립하는 걸 보고 많이 배운다”며 “그 모습이 가장 멋있다”고 수줍게 웃어 보인다.
두 사람이 함께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째다. 6살 때부터 아빠의 작품활동을 도왔던 보원양은 이제 개인 작품을 만들어 출품하는 어엿한 ‘작가’다. 이재원 작가가 ‘딸 자랑 한번 하겠다’며 최근 일화를 들려줬다. 지난달 열린 이재원 작가의 첫 개인전에 보원양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한 관람객에게 판매 문의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딸의 작품을 팔 수 없어 고스란히 들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부녀에겐 고무적인 일이었다.
보원양은 아빠에게 어린이용 브릭 ‘듀플로’를 선물 받았던 세 살 무렵 레고에 입문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린아이답지 않은 훌륭한 작품을 뚝딱 만들어냈다. 그 순간들을 아빠는 아직 잊지 못한다.
“한번은 동물농장을 만들어 놨더라고요. 건축설계사인 제가 봐도 구획을 잘 나눠 놔서 깜짝 놀랐어요. 보원이에게 설명을 부탁했더니 ‘여긴 길이 있어서 나무가 있고, 동물이 불편하지 않게 공간도 만들었다’고 했죠. 아, 우리 딸이 미술에 소질 있구나 했습니다.”
듀플로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돼 보원양은 성인용 브릭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옆에는 항상 아빠가 있었다. “레고는 아이가 혼자 놀기에도 좋지만 부모와 아이가 같이 놀기에 더없이 좋은 아이템”이라고 이재원 작가가 강조했다. ‘이렇게 만들어봐’라고 가르쳐주지 않고, ‘왜 이렇게 만들었니?’라고 묻고 ‘그 아이디어가 참 좋다’며 칭찬하는 것이 그의 놀이 방식이다. 보원양은 “아빠가 그냥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줄 때보다 무엇을 잘했는지 자세히 말해주면 자신감이 더 생기는 것 같다”고 화답했다.
이재원 작가 또한 할아버지, 아버지와 레고를 쌓으며 자랐다. 특히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는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레고 캐슬’ 시리즈를 사 오셨는데, 혼자 놀게 하지 않고 성이나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해주셨다. 이 작가는 “레고 캐슬을 조립하며 세계사를 다 익힌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 작가는 레고 놀이가 자녀와의 유대감에 영향을 준다는 데 강하게 공감했다. “코로나19로 육아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주변에 딸 가진 아빠들이 유독 고민이 많더라고요. 딸들과는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은 레고입니다. 레고를 하며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의 평소 생각도 알 수 있는 데다 친밀감, 유대감이 강력해지죠.” 이재원 작가의 말처럼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대화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간 부녀가 함께 쌓아 올린 건 레고 브릭뿐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깊은 유대감인 것이 분명했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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